이라크 침공이 시작되고 반전여론으로 세계가 시끄러운 지금 우리나라에서 또한 부시의 이라크침공에 대한 노무현의 지지와 파병에 대한 찬반으로 시끄럽다. 나는 물론 전쟁을 지지하지 않으며, 우리나라 군인들이 내나라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전쟁이 아닌 다른 나라가 벌이는 전쟁에 참가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처한 아픈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내렸을 그의 결정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고 결론내린 지금 내게 조금 더 설득력이 있는 근거와 99%의 공감을 가져다 준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노무현대통령과 개혁당의 이번 전쟁에 대한 태도에, 민노당 정책국장이 내 놓은 비난에 대한 반박형식의 글이기는 하지만, 이라크전쟁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견의 스펙트럼 속에서 무언가 핵심적이고 의미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에 퍼 놓아 본다.
이 글을 쓴 사람은 개혁적 국민정당 집행위원인 유시민아저씨이다.. 뒤늦게 구해 읽은, 그가 썼다는 유명한 80년대의 "항소이유서"는 그저 도덕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알량한 나라사랑이 아닌, 마음으로부터의 나라 사랑과 그에 따르는 행동을 일깨워 준 감동적인 글이었다. 또한 내가 이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고, 안일한 개인의 일상만을 살고 있구나 하는것을 반성하게 해 준 글이기도 하다.
밑의 글은 유시민의 홈페이지 (http://www.usimin.net)의 유시민의 아침편지 코너에 있는 글을 옮겨 둔 것임을 밝혀 둔다. 좀 길지만 찬찬히 읽어 주시면 고맙겠다.
오늘, 3월 20일 낮, 미군은 이라크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지난 번 아침편지에서 저는 부시가 지구촌을 망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개혁당은 부시의 전쟁행위를 강력하게 비난하는 성명을 냈고 당원들은 반전평화 행동에 어떻게 참여할지 논의하고 있습니다. 개혁당의 김원웅 대표는 파병반대 결의안에 서명한 데 이어 오늘 국회의원 회관에서 미군의 이라크 침공을 규탄하는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전쟁 지지와 파병 발언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북송금 특검법을 원안대로 공포한 데 이어 이라크 전쟁을 지지함으로써 지난 대선에서 자기를 지지해 주었던 유권자들을 서운하게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개혁당에까지 비난의 불똥이 튀는 것은 불가피한 일로 보입니다. 유권자 개인이나 평범한 네티즌들이 저와 개혁당까지 싸잡아 욕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송태경 정책국장이 어제 진보누리에 올린 글은 좀 달리 보아야 합니다. 민주노동당이라는 "대한민국 제3당 정책국장"의 발언치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저열하기 때문입니다. 네티즌들은 이 글을 민주노동당 당원게시판뿐만 아니라 제 개인홈페이지 게시판에도 퍼다 놓았습니다. 제목은 이렇습니다. "유시민과 개혁당 당신들은 이미 학살자와 한통속입니다." 여기서 학살자란 당연히 부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송국장의 논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조금 편집하겠습니다.
"국민과 국가를 대표하는 자(노무현)와 정부는 부시에 의한 부시를 위한 부시의 더러운 전쟁에 찬성했으며, 이제 곧 파병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지금 파병을 결정한 결정권자를 상대로는 투쟁하고 있지 않습니다. 유시민 같은 자는 반전을 말하면서 음흉하게도 노무현을 옹호하고 있으며, 또한 당신들이 좋아하는 노무현과 그 정부에 의한 파병동의서 제출을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 국회가 파병동의안을 부결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노무현과 정부가 찬성하고, 한나라당의 대다수 의원들이 찬성할 것이 뻔하며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대다수 의원들도 정부의 안을 부결시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당신들도 잘 알 것입니다. 한 마디로 노무현과 정부가 입장을 번복하지 않는 한, 더러운 전쟁에 한국이 동참하는 일은 기정 사실이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심지어 노무현과 정부의 결정을 옹호하면서 반전여론과 국회만을 상대로 투쟁하고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한편으로는 학살자와 한통속이 된 채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쇼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반전평화에 대한 입장, 그것은 당신들도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또 그러길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들의 진심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지금 분명히 반전의 가치를 저버린 노무현과 정부는 비난하지 않으면서(심지어 옹호까지 하면서), 이를 전제로 반전을 말하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송태경 국장의 논지입니다. 우선 미군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저의 생각을 다시 한 번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사담 후세인은 독재자이며 범죄자입니다. 국가폭력을 동원해 정치적 반대파를 말살하고 생화학 무기로 터키 접경 지역 쿠르드족을 대량 학살한 것은 명백히 인류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사담 후세인의 승리를 기원하는 일부 네티즌들의 생각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후세인의 범죄가 부시의 범죄를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지난 걸프 전쟁에서 미국은 수많은 민간인을 살상했고 이라크 봉쇄정책으로 이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을 더 혹심한 고통에 빠뜨렸습니다. 지금 벌이고 있는 전쟁 역시 이라크 국민의 인권과 세계평화를 위한 군사행동이 아니라 석유자원에 대한 탐욕과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윤추구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침략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수백만의 이라크 국민을 죽음과 기아와 질병의 골짜기에 밀어 넣는 범죄행위입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규탄하며 우리 국군을 그곳에 파견하는 데 반대합니다. 개혁당은 평화유지와 인도적 지원을 위한 행동이 아닌 모든 종류의 해외파병에 반대한다고 당강령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개혁당 당원들은 제가 사는 경기도 고양시에서도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 등 견해를 같이하는 분들과 더불어 반전과 파병반대를 위한 공동행동을 시작했습니다.
송태경 정책국장도 이걸 잘 압니다. 그런데도 그는 저와 개혁당을 "학살자와 한 통속"이라고 몰아붙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내놓고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송국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그에게 노무현은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는 자일 뿐 "나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그 심정 이해합니다. 저도 지난날 노태우씨를 "나의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나의 대통령"으로 인정한 사람은 김영삼씨입니다. 그 다음은 김대중 씨, 그리고 이번에는 노무현씨입니다. 독일 유학 중이었던 탓으로 투표를 하지는 못했지만 김영삼, 김대중 두 분은 제가 승복할 수 있는 절차를 통해 권력을 잡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송태경 국장은 노무현을 "나의 대통령"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보수정치에 대한 사무친 원한 때문이겠죠.
좋습니다. 저는 노무현을 "나의 대통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송태경 정책국장의 견해를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가 노무현을 "나의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는 저의 견해 역시 존중해 주기를 저는 바랍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나의 대통령"이기 때문에 내 뜻과 일치하는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나의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이 전쟁 지지와 파병 의사를 밝힌 것을 "옳지 않은 결정"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 결정은 "나의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내린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노무현 지지자와 반미투사, 민주노동당 당원들만 사는 나라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지난 번 편지에서 대통령이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이 결정의 잘잘못을 가릴 때 저는 제가 가진 정보와 가치기준을 적용합니다. 적어도 가치기준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저와 비슷하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가 제게는 없는 그 어떤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요? 사실 대통령과 저의 정보 수준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큽니다. 그러면 그가 때로는 제가 동의하기 어려운 결정을 할 수도 있는 것이죠.
저는 가치기준에 관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믿습니다. 그저 믿는 게 아니라 굳게 믿습니다. 유권자로서, 또는 이제 막 정치에 뛰어든 사람으로서, 제가 밀었고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굳게 믿는 것이 잘못일까요? 송태경 국장은 노무현을 철석같이 믿는 저 같은 사람을 두고 "노무현 광신도"라고 비웃겠지만 저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이 굳은 믿음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럽고 행복한 일이라고 믿습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송태경 국장은 자랑스럽고 행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제가 지지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가 원하는 것과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무현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철회해야 옳은 것일까요? 그를 "학살자와 한통속"으로, 진중권 씨의 말을 빌면 "학살 도우미"로 단죄해야 할까요? 송태경 국장은 그럴지 모르지만 저는 아닙니다. 저는 부시의 중동정책에 대한 노무현의 입장을 보고 그를 지지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가치지향, 그가 체현하는 권력문화, 그가 도전에 대응하는 방식, 그의 인간적 매력 등등 정치인 노무현의 총체적인 모습이 저로 하여금 그를 지지하게 만들었습니다. 구체적인 쟁점에 대해 때로는 서로 다른 판단과 선택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총체적인 부정을 불러오는 것이 아닌 한, 저는 앞으로도 그를 변함없이 지지할 것입니다.
저와 개혁당은 반전여론과 파병 반대여론을 더 크게 불러일으키고 국회의 파병안을 부결시키거나 파병안 가결을 지연시키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민주노동당과도 함께 하겠습니다. 그러나 반전여론을 일으키고 국회를 압박하는 일을 함께 하더라도 노무현을 공격하지 않으면 "학살자 부시와 한통속"이라고 욕하지는 마십시오. 저더러 "음흉하게" 노무현을 옹호한다고 욕하지도 마십시오. 저는 "음흉하게 노무현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내놓고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합니다.
대통령 노무현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이라크 전쟁과 한국군 파병에 반대하는 것을 정치적인 쇼라고 비난하지는 마십시오. 그건 생떼일 뿐입니다. 저는 제가 지지하는 대통령의 어깨에 놓인 짐을 덜어주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반미성전"의 선봉장으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치인으로서 저의 책임을 수행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존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함께 갑시다. 많은 곳에서 의견이 달라도 어느 한 지점에서 어깨를 겯고 함께 갈 수 있으면 가는 것이 바로 "연대"가 아니겠습니까?
송태경 정책국장께 주제넘은 충고를 하나 하겠습니다. 저와 개혁당의 "행동"이 잘못되었으면 비판하십시오. 그러나 "진심"이 무엇이냐고 "의심"하지는 마십시오. 우리는 상대방의 "진심"을 알 수 없습니다. 송국장이 저의 머리 속에 들어올 수 있습니까? 제가 송국장의 머리 속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까? 그렇게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벗이 생기지 않습니다. 당신이 써놓은 글을 차분하게 다시 읽어보십시오. 지난 대선에서 "빅3 후보"를 냈던 민주노동당이 아닙니까. 그런 공당의 정책국장으로서 그 직책을 걸고 할 수 있는 말인지 다시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당직자들이 그처럼 독선적이고 무례한 언행을 계속하는 한 민주노동당은 한국 정치지형의 왼쪽 구석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저는 감히 단언합니다.
제 말을 인정할 수 없다면 반론하십시오. 논쟁합시다. 치열하게,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그러나 공당의 일꾼답게 서로에 대해 예의를 지키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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