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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아

    2003.05.09

수아



지난달 보성차밭에 짬을 내어 갔을때, 우연히 만난 꼬마 아이의 이름이다.

차밭 사진은 이미 질릴 정도로 봐왔던 터이고, 그 상투적인 사진들과는 다른 사진을 건질 만한 자신도 없던 나는 여기 온 여행객들이나 한번 담아볼까 하는 요량으로 일행과 떨어져서 차밭 이랑의 구석쪽으로 털레털레 걸어가고 있었다.

저쪽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캐고 있는 할머니와 젊은 새댁,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여자아이. 호기심이 발동해서.. 다가가서 얼른 한 컷 담고, 짐짓 할머니께 말을 건네어 보았다.

뭐 하고 계시는 건가요?/ 아..쑥 캐고 있지.
여기서 캐신것도 드실 수 있는 거예요? / 그럼, 먹을 수 있으니까 캐는거지. 쑥은 야생이라 원래 이런데 나는걸 먹는 거라우.

이렇게 시작해서. 대충 고향이 어디며, 서울서 밤차를 타고 며느리, 손자, 당신까지 이렇게 모녀삼대가 같이 여행을 왔다는 얘기를 들려 주셨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에 인상이 우리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할머니. (사실 할머니라고 부르기엔 너무 젋으신 분이셨다.) 사진 한 장 찍어드리겠다고 했더니, 카메라도 마침 안가져 왔는데 잘 됐다며 반색을 하신다. 그렇게 사진을 찍어 드리고, 적어 주신 주소도 받아 오고...

밤차안에서 잠을 설쳤는지 꼬마아이는 연신 졸린 눈을 비비며, 할머니 등에 업혀, 엄마 손에 끌려 차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세 사람의 모습이 너무 좋아 보여서, 사실은 더 많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계속 졸졸 따라 다니기가 왠지 겸연쩍은 내 소심함으로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사진 몇장과 몇 마디 말로 끝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계속 따라 다녔다면 그들만의 정다운 여행에 불청객이 되었을 법도 해서 그만 찍기를 잘 했다는 생각도 든다. 여행에서 부딪히는 낯선 이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즐겁다. 어쨌든..내 첫 슬라이드 필름의 주인공이 되어주신 그분들께 감사 드리며, 내가 보내드린 사진을 맘에 들어 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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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흐린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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