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신당동 떡볶이촌이라고 써 놓고 글을 시작하지만 떡볶이촌과는 별로 상관없을 내용이 이어질 듯하다.
실은 휴가마지막날 학교로 돌아오기전에 어렸을때 내가 살던 동네인 신당동을 들렀다 왔다. 갑자기 얼마전부터 - 아마 작년부터인가- 내가 태어나서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살았던 신당동(왕십리 포함)이 그리워 져서 다시 가보고픈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렸을때 내가 딱지치기, 구슬치기, 짬뽕, 오징어포, 자치기들을 하면서 친구들과 뛰어 놀던 그 기억이 배어 있는 곳이 신당동이고 어렸을적 추억이 배어있는 곳을 다시 한번 찾아보고픈 마음이 한번 쯤 드는건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리라.
게다가 내가 살았던, 뛰어 놀았던 그 동네의 많은 부분이 재개발로 현대아파트가 들어서버려서 내 추억의 많은 부분까지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다시 한번 그 곳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들게한 이유였다. 그곳이 재개발 되어 아파트가 들어선것은 사실 벌써 오래전 내가 대학교입학 하기도 전이 아닐까 싶다. 대학교때만 해도 일부러 찾아가봐야지 하는 생각은 안 했는데, 서울에 떠나 있어서 그런건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건지 얼마전부터 자꾸 그곳이 그리워 지는 것이었다.
유락파출소, 한일교회, 문화교회, 박대통령 사택, 진미떡볶이 , 77약국 (80년대 초반에 신당 5동에 살았던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장소들..^^)등등을 돌아다니면서 찰칵찰칵 사진을 찍고..아 여기가 예전에 우리집이 있던 자리인데 이렇게 바뀌었군하면서 그 곳들을 "배회" 하면서 왔다.
그렇게 떠 돌아 다니다가 지나가게 된 곳이 진미떡볶이. 내가 어렸을때 참 맛있게 떡볶이를 먹던 곳이다. 잠깐 나가던 문화교회에서 주일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떡볶이를 사 주던 곳이며, 지나가다가 그 춘장양념을 한 떡볶이를 백원치씩 사먹던 그 곳. 떡볶이 한 접시에 오뎅국물 한 그릇을 항상 주던 그 곳. 그런데 그 곳이 아직도 영업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진미떡볶이집은 여기서 10분정도 떨어진 신당동 떡볶이촌과 흡사한 양념을 쓴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1인분치 떡볶이를 주문했는데, 내가 어렸을 적에 장사를 하시던 그 아주머니께서 아직도 그대로 떡볶이를 파시는게 아닌가! 여기서 37년째 떡볶이를 파신다고 한다. 내가 그 곳에서 떡볶이를 사 먹던때가 81~84년 무렵 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이 할머니는 당연히 아줌마였고 어렴풋한 내 기억속에서 억세고 좀 무서운 인상의 아줌마의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20년만에 다시 뵌 그 아주머니는 이제 일흔을 넘긴 너무나도 부드러운 인상의 할머니였다. 세월은 그때 떡볶이 사먹던 어린아이를 서른이 넘긴 아저씨로 떡볶이 장사 억척 아줌마를 칠순을 넘긴 할머니로 다시 만나게 해 준다.
사실 2천원(그때 백원에 한 접시하는 떡복이는 떡 10개, 1인분이라고 어른들이 주문하는 단위의 떡볶이는 5백원 이었던 걸로 얼핏 기억이 난다.)을 주고 먹은 춘장떡볶이는 어렸을적 나의 특별 메뉴였던 그 떡볶이 맛은 아니었다. 도대체 그땐 이걸 그렇게 맛있다고 생각하고 먹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냥 가게를 나서기가 멋적어 근처 마트에서 포도주스 한병을 사다드리니 떡볶이집 할머니 너무 미안해 하신다.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건네고 진미떡볶이 집을 나서면서, 흥인국민학교를 지나면서 20년전 여러가지 기억들을 떠 올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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