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번째 원더메모


비리혐의로 기소되어 KT를 떠나게 되는 남중수 사장의 이른바 '원더메모'라는 것이 세간의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 신입사원으로 KT에 입사해서 26년동안 KT에 몸담아 오다 사장의 자리에 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그가 서른번째, 마지막 원더메모를 이임사로 대신하고 떠난다.

나는 그의 혐의가 어떠한 것인지 어떤 범죄의 사실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지만, 적어도 26년간 한 조직에 몸담고 회사를  위해 청춘을 다 보내버렸을 한 경영자의 씁쓸한 퇴장을 바라보면서 가지게 되는..인간적인 연민이 피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초라하지 않기를 바라며, 멀리서 나마 박수 보내드리고 싶다.

그가 인용한 에머슨의 "성공이란 무엇인가". 비록 조금은 진부하게 들릴지라도 가장 진솔한 삶의 진실을 말해 주는 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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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취임 이후 경영을 하면서 느낀 솔직한 심정이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KT가족과 함께 나누고 싶어 쓰기 시작한

원더메모가 어느덧 서른 번째가 되었네요.

 

첫 번째 원더메모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으신가요?

“사막을 건널 때 지도보다는 나침반을 따라가라”라는 제목이었지요.

인생은 예기치 않은 일도 많이 생기고, 주변 상황도 너무 빠르게 변해

마치 모래사막을 걷는 것과 같으므로

삶의 방향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나침반과 같은 이정표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수급월불류(水急月不流). 아시겠지만 제 나름대로 해석하면,

“냇물 속의 달이 급하게 흘러가는 듯 하지만 달은 그대로 있고,

물만 급하게 흘러간다” 라는 뜻입니다.

주변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따라 흔들리지 않고 근본에 충실한 달을 닮으려 언제나

노력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저의 부덕으로 인해 회사가 마치

나침반도 없이 모래사막을 걷는 것처럼 창사 이래 최대 혼란을 겪으며,

임직원 여러분들께도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드렸습니다.

사실관계의 진위나 그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여러분들께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공사 출범과 함께 26년간 보람과 열정으로 일하게 해준 KT에

報恩의 마음으로 CEO자리에 섰으며, 지난 3년여 동안 KT의

성장과 재도약을 위해 여러분들과 함께 밤낮으로 최선을 다했기에

다른 미련은 없습니다. 또한 평소 개인적으로 CEO에게는 정해진 임기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제 인생의 나침반과 같았던

노자의 동선시(動善時)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며, 여러분 곁을 떠나고자 합니다.

 

제 인생의 희로애락은 모두가 여러분과 함께 했습니다.

자랑스러운 KT 가족의 일원으로서 20대 청춘에 시작해서 26년간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만 생각하고 지내던 추억이 아른거립니다.

자정이 훌쩍 지날 무렵 사옥을 지나다가

군데군데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사무실을 올려다 보았을 때…,

그리고 통신주에서 막 내려와 장갑을 벗고 뜨겁게 제 손을 잡아주던

현장 직원 여러분의 미소 띤 얼굴과 굵은 땀방울에서…,

현장에서 고생하는 여러분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감동하고 가슴 아파했던 기억들….

 

지금 이 원더메모를 쓰고 있는 이 새벽에도,

제게 직장생활의 보람과 CEO로서 책임감, 그리고 회사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게 해 준 3만6천 KT가족들을 생각하면

뿌듯하면서도 저미어 오는 가슴 주체할 수가 없네요. 회사를 엄청나게
성장시켜서 여러분들의 봉급 50% 인상, 보너스 1000% 지급해 주고 싶었는데…,

그거 한번 못 드리고 떠나는 마음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몇 배 더 훌륭한 후임 사장님이 오셔서 여러분이 만들어 놓은

좋은 기반 위에 IPTV 등 우리가 새롭게 시작한 사업들을 한층 발전시켜서,

정말 우리가 그리던 글로벌 미디어 그룹으로 변화해 갈 것을 저는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희망과 믿음이 우리의 땀과 노력으로 발현될 때

지금의 ‘非常’시기는 미래로‘飛上’하는 기회로 탈바꿈할 것입니다.

저도 어디에 있든 영원한 평생 KT맨으로 여러분들을 그리워하며 도울 것입니다. 

 

저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영원히 떠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정들었던 집을 잠시 떠나

여행 다녀오는 마음으로 가고자 합니다.

 

그 동안 부족한 저를 믿고 도와 고생한 내부 고객님들께 큰 절 올리며

석별의 정과 함께 제 서른 번째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원래 제 이임식은 원더메모로 대신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 바램은 이루어진 것 같군요.

 

끝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를 보내드립니다.

이 시의 표현처럼, 저로 인해 KT와 여러분이 조금 더 행복해졌기를 바랍니다.

 

Wonderfull KT!!

 

남중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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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란 무엇인가

               - 에머슨 -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 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의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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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흐린날엔

Wanderer.. kwaksanghoon@gmail.com